내리사랑이라고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말의 의미를.
난 사랑은 쌍방향이라 여태 믿어왔다. 사랑이라는 것은 어떠한 관계를 불문하고 일방통행은 없다라고 믿어왔다. 하물며 부모자식간이라 하더라도 그럴것이라 믿어왔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시엄니표 된장과 고추장을 싸들고 저녁 대신 먹으려고 대충 깍아넣은 과일 봉다리를 들고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도 연신 땀이 멈추질 않았다. 정말 대구 날씨는 말그대로 푹푹 쪘다. 대기실도 덥기는 마찬가지라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등이 다 젖을 정도였다. 얼른 기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배웅 나오신 시아버지를 뒤로 하고 서둘러 탑승구로 내려갔다. 여전히 덥고 여전히 땀이 흘러 나쁜 체취가 나는 것도 같아 기분이 영 찝찝했다.
기차에 탑승하고 자리를 찾아 짐정리를 하고 좌석에 앉았는데 생각보다 기차안이 시원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좌석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좀전까지 괜찮았는데 말이다.
날이 너무 더워서 일거다. 기차안이 너무 시원해서 일거다.
헤어질때 말을 한마디도 잇지 못하시던 시아버지 때문일거다. 맨처음 만나자마자 눈물을 보이신 시어머니 때문일거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그분들의 무엇이 나를 자극했단 말인가. 내가 과연 그분들을 사랑하기는 하는가 말이다.
그것은 그저 내리사랑이었다. 감히 내가 흉내내지 못할 그런 위대함이었다.
나는 어려서 엄마를 잃고 무뚝뚝한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나 부모사랑을 잘 모르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들하고의 관계도 일방적이거나 무조건이거나 무한이거나 희생적인 관계는 아닌것 같다. 그냥 인간대 인간의, 조금 특별한 돈독함을 유지하는 관계라 할까. 나에게 내리사랑은 없는 것 같았다.
두분이 보여주신 그 위대함은 두고두고 나를 반성에 들게 할것이고, 평생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며 더 많은 사랑을 줄수 있게 원동력을 마련해 줄 것이다. 받은 만큼 내려주는게 내리사랑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받은 그 사랑에 더 많은 가치를 더해 줄 수 있는 것들이 내 안에 풍부하게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큰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겠지. 나도 이제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