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어

@kyslmate · 2020-01-26 04:56 ·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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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가 슈가맨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원년 멤버들이 함께 몇 곡을 메들리로 불렀다. 내 마음 깊이 가라앉아 있던 멜로디들이 되살아났다. ‘옛 친구에게’, ‘운명’, ‘초등학교 동창회 가는 날’을 듣는 동안 코끝이 시큰해졌다. 옛 노래를 듣고 감정이 북받치는 건 처음이었다.

1997년에 나왔던 여행스케치 6집 앨범 <처음 타본 타임머신>을 카세트테이프로 질리도록 들었었다. 그 앨범은 여행스케치의 지난 명곡들을 모은 베스트 앨범 격이었다. 그 노래들은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고, 어떤 ‘그리움’의 색 하나를 내 마음의 담벼락에 칠했던 것 같다. 마음의 담벼락에 칠해진 감정의 색들은, ‘누군가를 어떻게 그리워할지’, ‘추억을 어떻게 돌아봐야할지’를 배울 때, 안내판 구실을 해왔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노래들은 ‘상실’과 ‘그리움’, ‘추억’들을 얘기하고 있었고, 그 진정한 의미를 갓 대학생이 되었던 난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공기 중에서 알 수 없는 향기를 들이마시고 눈을 감고 그저 좋다며 고개를 끄덕이듯, 상실과 그리움을 노래하는 그 음악도, 내 귀에 그렇게 온전히 알 수는 없는 상태로 들어와 가라앉았던 것 같다.

이제 돌아볼 추억이라는 게 숲처럼 형성되고, 얻은 것만큼 잃은 것도 많아진 나이가 되었다. 마음 아래에 가라 앉아 있던 멜로디와 마음의 담벼락에 빛바랜 색으로 남아있던 감정은, 이제 그게 뭔지 알 것 같은 것이 되어 마음에 닿는다. 그때 코끝과 눈시울이 반응한다.

여행스케치의 노래 제목 중 ‘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어.’라는 게 있다. 나직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일, 그 사람이 듣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는 일, 그게 잦아질수록 우린 잃어버린 것들로부터 더 멀리 떠밀려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스케치의 데뷔곡, <별이 진다네>의 가사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나의 꿈은 사라져가고 슬픔만이 깊어 가는데. 나의 별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짙어 가는데.” 결국 남은 건 어둠이다. 이 가사만 봐서는 허무하다. 누군가는 힘없이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그렇군. 꿈도 별도 사라지고, 결국 슬픔, 어둠이 짙어 가는 거야.”라고.

하지만, 이 가사를 보고 난 오히려 위안을 얻는다. 삶이란 그렇게 사위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거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꿈과 별이 삶의 전부가 아니다. 꿈과 별이 사라졌다고 삶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삶은 그 이상의 것이다. 꿈과 별이 사라지고, 슬픔과 어둠이 짙어지고, 그 후엔 또 다시 다른 의미의 빛들이, 다른 가치들이 삶을 비출 거라고 믿는다.

여행스케치 노래들을 반복해서 듣는다. 노래들이 말한다. “보이지? 잃어버린 것들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밀려왔는지. 자 봐, 내가 비춰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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