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내게 좋은 책

@kyslmate · 2019-11-14 02:07 · kr

도서관.jpg

내게 있어 좋은 책은, 그 책을 읽는 동안 새로운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피어나서 뭐라도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책을 읽는 동안은 그 책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 책의 내용과 쓰고 싶은 내용이 머릿속에서 뒤엉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좋은 책은 진도도 잘 안 나간다. 쓰기 위해 책을 수시로 덮기 때문이다.

내용에 설득력이 없고, 별 감흥이 없는 책도 자주 덮는데 이런 경우, 다시 펴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난 썸만 타다가 본격적으로 사귀기 직전 단계에서 이리저리 피하는 사람처럼 일말의 죄책감을 갖고 그 책을 대하게 된다. 그 책은 책상과 소파 한 곳에서 내 연락을 기다리며 쌓여 있다가 어느 날, "여기 좀 정리해야겠는 걸." 하는 무심한 손길에 의해 책장으로 옮겨진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처럼, 좋은 책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 따라야 한다. 좋은 이를 만났을 때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면을 새로이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좋은 책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하게 되는 순간을 자주 만들어 준다. 멋진 일이다.

좋은 책이 주는 가장 멋진 일은, 내가 누군가에게 그 책 같은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따뜻한 느낌과 생경한 감정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좋은 책과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이런 면에서 연결되어 있다. 어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면 독서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자체가 경이로워 그 속의 문구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콩나물시루의 물처럼 다 빠져나가서 특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내 성장의 자양분이 된 책들이 있다. 내 삶에서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또렷이 기억나는 사람, 그리고 지금은 기억이 희미한 사람들, 그리고 그런 책들이 지금의 나를 조성해왔다. 누군가는 값없이 얻는 행운을 바라지 않겠다고 공언하지만, 난 좋은 사람과 좋은 책을 만나는 행운을 포기하지 않겠다. 뻔뻔하기 그지없어도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에 몸을 푹 담그겠다.

대문이미지.jpg

#kr #kr-pen #jjm #manamine #jjangjjangman
Payout: 0.000 HBD
Votes: 47
More interactions (upvote, reblog, reply)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