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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간병인이 있는 병실에 입원하셨다. 병실에는 간병인 두 분이 계셨는데, 이 분들은 여덟 명 남짓의 환자들을 돌봐주셨다. 병실의 환자들은 대부분 노령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수술 후 섬망 증상이 와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개인 간병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 환자들의 보호자가 환자 곁에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노인 환자들은 이런저런 손가는 일이 많았으므로 병실에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간병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두 분 간병인은 똑같은 역할을 부여받고, 환자의 보호자로부터 똑같은 보수를 지급 받으셨지만, 두 분에게서 받는 환자와 가족들의 느낌과 인상은 사뭇 달랐다. 인지 능력이 떨어진 노인 환자들이 지시에 따르지 않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럴 때 한 분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했고, 한 분은 큰 표정 변화 없이 환자에게 조곤조곤 상황을 설명하거나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했다.
나 역시 환자의 보호자로서, 간병인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할 때는 괜히 눈치를 보게 됐고, 아버지 역시 그런 반응엔 스트레스를 받아 섬망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어쨌든 간병인들은 환자의 지근거리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었으므로, 환자 보호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그 분들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게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병실의 환자가 줄어들어 두 분 간병인이 한 분씩 번갈아 계실 때가 있었는데, 함께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한 간병인이 계실 때는, 집에 가겠다고 종종 소란을 피우시던 아버지의 정신 상태도 눈에 띄게 안정감을 찾았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상태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어 불안하고 막막했던 나에게, 그 분의 배려가 담긴 한 마디는 큰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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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없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우리의 일이라는 게 그렇다. 모든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삶의 영역에서 누구나가 하는 일들을 수행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진짜 위대함은, 위대하다고 정해진 일을 할 때 생기는 게 아니고, 평범하고 똑같아 보이는 일 속에서 차이를 만들어낼 때 생긴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일을 하는 태도와 방식은 제각각이다. 일을 할 때, 자신의 편의를 중심에 두고 하는 사람은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하는데 만족한다. 예를 들어, 어떤 공무원이 그냥 절차대로 진행하면 될 일을, 그 일로 인해 영향을 받을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여 한 두 단계의 과정을 더 밟아가며 일을 추진할 때, 적용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매우 큰 힘이 될 것이다. 누군가가 지친 몸과 마음으로 식당을 찾았을 때, 주인아주머니의 친절한 한 마디는 그에게 뜻밖의 위안이 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엔 AI가 인간의 많은 일을 대신하겠지만, AI가 할 수 없는 일 중 하나는 바로 이 ‘사소한 친절’일 것이다. 정해진 업무 매뉴얼이나 의무는 아니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만 나오는 그런 말과 행동 말이다.
우리는 많은 친절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것이 마치 공기나 바람처럼 이 세상에서 흔하디흔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다. 친절은 공기나 바람이 아니라, 잘 다듬어져 부드러워진 바위와 같다. 한 사람이 베푸는 친절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진 그 사람의 태도이자 자세다. 흔해 보이지만,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업에서는 친절을 가르치고 교육한다. 이렇게 어떤 목적이 있는 친절, 매뉴얼에 포함된 친절은 세상에 많아 졌지만, 개인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로서의 사소한 친절들은 점차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자로 잰 듯 정해진 책임과 권리가 강조되는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진짜 친절에 목말라 간다. 그래서 사소한 친절을 몸에 잔뜩 묻히고 있는, 부드러운 바위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존재만으로 위안이 되고 가슴이 뛴다.
앞에 펼쳐진 길을 보며 막막하고 불안한 감정을 느껴본 사람들은 안다. 그리고 민감해진 그의 마음은 느낀다.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일을 수행하면서 그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는 그 미세한 움직임을 말이다. 그 부드럽고 미세한 바람에 그의 마음은 파르르 떨린다. 차가웠던 마음에 이내 온기가 돈다. 그런 이들이 있다. 차이가 없는 일을 하면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욕심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자고 다짐하지만, 사소한 친절을 베푸는 이들을 만나고 싶다는 욕심만은 놓지 않겠다. 그리고 그런 사람으로 다듬어지고 싶다는 욕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