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에 곧 한 번 만나자고 했던 지인을 넉 달이 지나서야 만났다. 장소는 막창 무한 리필 식당이었다. 만나기 전날, 극적으로 다음 날 저녁에 시간이 된다는 걸 알게 된 나는, 그를 떠올렸다. 만남의 약속이 부도 수표가 되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난 바로 카톡을 보냈다. “내일 저녁 시간 괜찮으면 밥 함 묵자. 막창 좋아해? ○○동 ○○막창 집에서 보는 거 어때?” 난 자고 일어나서 좋다는 답을 확인했다.
비가 오다 말다해서 공기는 꿉꿉했고, 하늘은 잿빛이었다. 5시 반, 막창 집에 들어서니 벌써 반 정도 채워진 좌석들 사이로 그가 보였다. 그는 나를 발견하곤 세상 처연한 모습으로,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악수를 나누고 막창을 구웠다.
“날 잊은 줄 알았어요.” 그가 말했다. 몇 달 전, 그는 사귀던 여자와 헤어졌다. 결혼 얘기까지 오가던 사이였는데, 뜻하지 않은 일로, 말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일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그는 두세 달간 혼돈 속을 헤맸다고 한다. 이별 직후, 그가 내게 한 번 보자고 연락을 했던 것이다. 형이라면, 이 상황에서 적절한 말을 해줄 수 있을 거 같다며.
그래 다음 주쯤 한 번 보자고 약속을 하고 난 후, 내게도 몇 달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아버지의 교통사고. 허벅지 골절로 거동을 못하는데다, 수술을 앞둔 노인들에게 잘 온다는 섬망까지 와서 치매 환자처럼 되어버린 아버지를 챙기느라 일상의 일부가 구겨져 너덜너덜해졌던 얘기를 압축해서 말하곤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마치 지난 몇 달 간 세상의 오지에 다녀온 경험담 같았다. 작은 천 쪼가리로 중요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비바람 부는 들판을 통과한 이야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괴수를 만나 온 몸에 타박상을 입고 도망친 이야기,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어두운 동굴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콧물을 흘리며 운 이야기. 이제는 겨우 오지를 좀 벗어나,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하고 지난날을 복기하는 시점이었다.
내가 그에게 해준 말은 대체로 이런 말들이었다. “그때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일이 틀어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면 너무 괴롭지. 그렇게 생각하지 마.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 인연이 되려면 처음에 안 될 거 같아도 일이 술술 풀리거든.” 그리고 내 손으론 이런 말들을 해주고 있었다. “지금 이 앞에 막창이 있잖아. 찍어 먹을 카레 가루와 양념장도 있고 말이야. 무한 리필이야. 먹고 죽자고.”
그는 요가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어디에도 마음을 쏟을 수 없었다고 한다. 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을 대피소 삼아, 찢겨진 일상을 한 땀 한 땀 기워나갈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남들이 퀼트로 보던, 누더기라 보던 간에.
이곳 막창 집은 고딩들의 성지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감당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 6시 반을 넘어가면서 이미 좌석이 꽉 찼고, 나보다 덩치 큰 고등학생 여럿이 가게 입구에서 손님들을 기웃거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카페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차는 어디 댔어?” “안 가져왔어요, 술 마실 지도 몰라서.”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내 차로 카페가 모여 있는 거리로 이동했다. 그는 커피는 자기가 사겠다고, 커피를 잘 하는 집을 안다며 날 이끌었다. 그곳은 경력이 화려한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카페로, 소문난 커피 맛집이었다. 메뉴 가격이 프랜차이즈 대형 커피숍 보다 비쌌지만, 빈자리는 몇 개 남아 있지 않았다.
“이곳은 커피를 정말 잘해요. 뭐 먹을래요?”
“난 밀크티. 커피를 잘 안 먹어.”
“아, 그랬죠, 참. 여긴 커피가 유명한데. 저도 지금 커피 먹으면 잠이 안 올 거 같아요.”
결국 우린 커피를 제일 잘 하는 커피 가게에서 둘 다 다른 차를 주문했다.
“글을 써 보는 건 어때? 책을 읽는 건? 좋아하는 뭔가를 하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건 중요하더라. 처칠도 그랬다잖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트레스가 극에 다다르면, 조용히 들어가서 그림을 그렸대. 그러면서 자기 존재를 다시 확인했던 거지.”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집에 그림이 가득한 책만 늘어가요. 드로잉은 좀 해요. 문센에서 배웠어요.”
“드로잉 좋다. 나도 배우고 싶다. 어느 문화센터…….”
이렇게 저렇게 사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가 예전에 소개로 잠깐씩 만났던 여자들을 소환해서 어떤 사람의 어떤 면이 좋았는지, 왜 그 사람들은 잘 안 됐었는지, 따위의 얘기들을 화려한 경력의 바리스타가 만들어준 차의 주전부리 삼아 주절거렸다. 웃고 한숨 쉬고 유대감을 쌓았다. 나누는 얘기들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시시껄렁하다는 사실은 증명한다. 우리의 관계가 세계 평화를 고민하는 사이보다 더 깊고 돈독하다는 걸.
난 우리의 저녁 만남을 마무리할 마지막 코스를 제안했다. 중고 서점에 가자. 그는 흔쾌히 동의했다. 내가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와 김정운 교수의 옛 책들을 찾아 나선 동안, 그는 한 곳에 꽤 오래 서서 드로잉 북을 펼쳐 보고 있었다. 내가 이 서가 저 서가 왔다 갔다 할 동안에도 같은 곳에서 비슷한 자세로 그림을 살펴보았다.
에세이 서가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걷는 듯 천천히>를 발견하고 이 책을 그에게 선물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는 한동안 요가를 하고, 드로잉을 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그가 느꼈던 슬픔과 비참함을 치유해나갈 것이다.
난 좀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김정운의 <에디톨로지>를 샀다. 아마 당장엔 그 책을 꽉 찬 책장에 꽂는 창의적인 방식을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린 중고 서점을 나왔다. 그가 말했다.
“중고 서점에 와서 책 보는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일 거 같아요.” “(보시다시피.)”
중고 서점에 대한 색다른 견해군. 중고 서점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조사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되겠다. 그 중엔 책을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훨씬 빠른, 정기적으로 책장을 채우면서 지적·정서적 역량도 채웠다고 착각하는 나 같은 사람도 상당수겠지. 새 책 한 권 가격으로 중고 책 2~3권을 샀다고 자랑하지만, 책을 2~3배 많이 읽는 건 아니니.
그렇다면 나처럼 중고 서점을 드나들며 행복해 하는 사람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 걸까. 어쩌면 (생전 읽지 않을지도 모르는) 중고 책을 사면서 돈을 아꼈다고 착각하고, 책을 책장에 꽂으면서 나의 인문학적·문학적 역량에 양분을 공급했다고 착각하고, 시간이 빌 때 언제든 갈 곳이 있다고 착각하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 아닐까. 착각을 하면서 행복해하니, 어떻게 보면 착한 사람들이 맞다. 다른 사람을 쥐어짜거나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도 행복을 누릴 줄 아니 말이다.
9시가 조금 넘어서 그의 동네에 그를 내려주었다. 그가 내리면서 말했다.
“밥 먹고, 차 마시고, 서점 가고. 뭔가 풍성해진 느낌이에요.”
“절대 우울증은 걸리지 마. 그거 안 좋아.” 난 웃으며 말했다.
“우울증 안 걸리도록 자주 불러 주세요.”
“그래 또 봐.”
그의 손끝에서 많은 드로잉 작품이 탄생하길 바란다. 일상에서 신비한 순간들을 포착하며 그의 삶에서 어떤 행복도 거짓말처럼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길 바란다. 난 김정운의 책을 책장에 꽂으며 좀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을 하며 그 날의 마지막 행복을 챙겨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