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질환이나 어떤 증상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체질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한의원을 방문하시거나 문의를 해오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홈페이지 등에 마음 편히 상담 문의를 해주실 것을 밝혀두기도 했고, 한의원 건물 정면에 사상체질 간판을 크게 걸어두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상담을 진행하다 종종 받게 되는 질문은 '체질은 변하는가?'입니다. 한의학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서 '체질 개선'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고, 다양한 매체와 장소에서 체질에 대한 이질적인 정보들을 다루면서 많은 분들에게 궁금증이 더해진 것 같습니다.
한의학에도 다양한 체질론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상체질을 두고 이야기하자면, 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는 체질이 일생 동안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근래에도 그에 대한 논란이 종종 있었고, 많은 환자분들께서 그동안 한의원마다 체질 진단이 다름을, 체질에 대한 정보를 봐도 다 자신의 체질 같다는 이야기를 해오셨습니다. 아마 지금 작성하는 포스팅은 대부분 그에 대한 답이 될 것 같습니다.
현대에 와서 설문 조사, 체간 측정, 목소리 분석 등 여러 가지 객관화된 지표를 활용하는 방식이 개발되어왔지만, 완벽하게 체질을 구분하는 명확하고 단일한 방법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직까지 어떤 검사법에도 사상의학의 이론과 원리가 완전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애초에 체질을 구분하는 수많은 기준들이 존재하며 어떤 시점에서 어떤 기준을 적용하고 종합할 것인가의 문제는 사상체질을 공부한 사람의 판단에 좌우될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단일한 검사법은 존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기준들에 대해서 조금 더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예를 들어 사상체질별 주된 정서에는 애로희락(哀怒喜樂)이 있고, 외형적으로 태음인은 요위지입세(허리) 태양인은 뇌추지기세(머리), 소양인은 흉금지포세(가슴), 소음인은 방광지좌세(엉덩이)가 두드러진다고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사상체질별 지표에는 이 외에도 천시, 인륜, 지방, 세회로 나누는 것과 같은 정신적 기준점들, 함억제복(頷臆臍腹)이나 두견요둔(頭肩腰臀)과 같은 다양한 외형적 지표들이 존재합니다. 매 상황마다 어떤 기준점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시간과 경험, 사상의학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체질적 요소와 내적, 성격적 요소가 불일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 그 원인은 부모님이나 가족의 생활습관과 성격이 영향을 미쳐 그 체질적 특성을 닮게 된 것일 수도 있고, 성장 과정에서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반대의 체질적 특성을 갖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주위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을 살펴보면 어떤 친구는 그 성격이 크게 변하지 않은 반면, 또 어떤 친구는 어렸을 때와 학창시절, 그리고 현재 많은 차이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론 제 주위에도 어렸을 때에는 누가 뭐라하든 잘 웃고 둥글둥글했었지만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공격적인 농담도 즐겨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갖게된 친구가 있는데 이 경우 후자의 예에 해당합니다. 소설에서는 이런 차이를 평면적 인물과 입체적 인물로 구분짓고는 합니다만, 사상의학적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이는 태음인이 자라면서 소양인의 특징을, 혹은 소음인이 자라면서 태양인의 성격을 갖게 되는 것과 같은 경우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마는 소음인이 태양인과 소양인의 특징을, 소양인이 태음인과 소음인의 성격을, 태음인이 소양인과 태양인의 모습을, 태양인이 소음인과 태음인의 자질을 갖게 되는 과정은 독행과 박통이라는 용어로 설명했으며, 상반되는 체질의 기운을 발휘하게 될 때의 특징도 모두 체질별로 다르게 풀이했습니다. 결국 본래의 체질은 고정된 상태에서 우리 모두 소양인이기도 태음인이기도, 소음인이 될 수도 태양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또, 그런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사상의학의 핵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편, 어떤 사람이 본디의 체질과 상반된 성격을 계발하고 그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을 때, 또는 외부 환경이나 생활 습관 등으로 인해 그 본연의 체질적 특성들이 잘 드러나지 않을 때 한의원을 방문하였다면, 과연 올바른 체질 진단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체질 진단을 할 때마다 받게 되는 숙제인 것 같습니다. 변화하는 인간의 성격을 간과하고 당장 드러나는 모습이나 특징들에 집착하게 되면, 대다수 사람을 특정 체질로 보게 된다든가 하는 등의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치료와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의 처방을 하게될 수도 있어서 문제가 됩니다. 내원하신 환자분에게 자신있게 체질에 대해 말씀드리고 나서도 늘 스스로 돌이켜보고, 염려하고, 곱씹게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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