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카』는 대학생 때 "의료 윤리" 교양 수업 중에 교수님으로부터 추천받았던 영화입니다. 당시 수업이 끝나고 집에서 찾아 봤었는데, 며칠 전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나서 떠올라 다시 시간을 내어 시청했습니다. 워낙 유명한 영화이기 때문에 많은 스티미안 분들께서 이미 보셨을 것 같긴 합니다만,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고 여전히 잘 만들어진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어 혹시 놓치신 분들께는 추천을 드립니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에는 그 어감 때문에 일본 영화인 줄 알았지만 미국 영화이며, 지금보다 훨씬 젊은 시절의 에단 호크와 우마 서먼이 주연했습니다. 가타카(GATTACA)는 DNA의 염기 AGTC를 배열하여 임의로 만든 단어라고 합니다.
미래의 어떤 시점에 유전자 조작 기술은 상용화가 되었고, 인간은 유전자 조작이 된 인공 수정을 통해 어떠한 하자도 없는 완전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성장하면서 각종 유전병에 걸릴 가능성은 0%에 수렴하며, 미래 그 아이의 외모나 지능 또한 상위 수 퍼센트를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여러 제도적 선택을 받고 가능성을 인정받게 되며, 그들의 DNA 염기 서열은 1초 만에 분석되어 시험에서든 진급에서든 프리 패스 역할을 합니다.
물론 현재와 같이 자연 수정을 통해서 태어난 빈센트와 같은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사람들과는 선천적인 능력에 차이를 보이며, 태어날 때부터 각종 질환에 걸릴 확률과 문제 성향이 소수점까지 분석되어 보고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차별을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회사에서의 입사 인터뷰는 소변 분석 검사가 전부입니다.
허약 체질로 태어나 30세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된 자연분만인 빈센트는 완벽하게 태어난 그의 동생과 늘 비교당하며 성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찍이 키는 동생보다 작아지고, 어떤 진로도 선택할 수 있는 동생과 달리 빈센트는 소중하게 간직한 우주 비행의 꿈을 부모에게마저 제지당합니다. 제도적으로 우주비행사가 되려면 유전자 테스트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생과의 바다에서 멀리 가기 대결에서 마침내 승리를 한 빈센트는 동생과의 격차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느 날 홀연히 집을 떠납니다.
우주 비행의 꿈을 놓지는 않았지만 유전자 테스트라는 관문을 넘을 방도가 없는 빈센트가 결국 찾아낸 방법은 실패한 유전자 우성인의 이름과 유전자 정보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일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낙오하여 폐인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자신과 비교적 닮은 사람을 찾은 빈센트는 제롬 모로우라는 그의 이름과 정체성을 구매하여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으로 꿈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아마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을 향해 이어질 것입니다.
많은 과학자와 지식인들이 유전 공학의 발전이 지금보다 완전한 인간을 만들어낼 것이라 기대합니다. 폭력성과 같은 성격적 결함은 제거되고, 암과 같은 질병의 발생은 미리 차단되며, 평균 이상의 지능과 신체 능력이 확보되어 우수한 유전자만이 전파되는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가정에 '정말 그럴 수 있을까?'라며 이의를 제기합니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몰락한 '완전한 인간'과 사람들의 편견을 극복한 '부족한 인간'을 보여주면서 말입니다.
학생 때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미래에 유전자 변형을 통해 완벽한 인간들이 등장하게 된다면 한의학은 더 이상 쓸모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완벽한 인간들도 여전히 '인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유전자 변형을 통해 완벽하게 태어난 인간들도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완벽'에 대한 스트레스를 겪게 될 것이며, 그들만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할 압박감에도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인해 생긴 지나친 자기애는 더욱 내려놓기 어려워질 것이며, 그와 함께 커져버린 오만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올바로 기능하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좌절의 경험을 통해서만 얻게 될 수 있는 가치들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도 결함이 될 수 있습니다. 경험의 부재는 인격적 성숙을 저해할 것이며, 이는 곧 '인간'의 능력 중 어떤 부분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결국,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 이면에 회복의 의미를 지닌 질병은 여전히 존재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모든 상상과 가정도 '인간'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한계를 지니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영화 『가타카』는 '인간'의 가치를 옹호하며,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학문, 신념, 제도와 같은 것들에 반기를 드는 작품들 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가끔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치 체계에 '나'를 맞추려 안주하거나 포기하고 싶어질 때, 혹은 어떤 보이지 않는 벽과 같은 것들을 목격하게 될 때, 매일매일 온몸의 각질을 벗겨내던 『가타카』의 빈센트를 떠올리고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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