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척]아들

@shiho · 2018-11-25 09:21 · kr

"여기가 허벅지고요, 여기도 허벅집니다... 보이시죠?" 지난 19일 초음파 검진의가 가리킨 아이 허벅지 사이에 뭔가가 보였다. 아이는 아들이었다. 진료실 밖에 나와 확인하는데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아내도 그런 것 같았다.

성별이 뭐든 나는 정말 상관이 없었다. 아이는 우리 부부에게 와 준 것만으로 그냥 고마울 뿐이다. 아내 뱃속에서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으며, 그게 내 자식이라는 게 신비로웠다. 아직 사람이라기보단 말 못 하는 한 엄청나게 귀여운 생명체가 초음파 영상에서 꼬물거리는데, 역시 그게 내 자식이라는 생각에 어쩔 줄 모를 만큼 기뻤다. 그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감동적인 나날이었다. 이미 너무나 커다란 선물이니까. 성별은 궁금했지만, 굳이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아들이라는 사실에 새롭게 또 다른 기쁨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꿈에서 아이는 한 번도 아들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물론 이날 우리 모두가 영상을 잘못 봤으며 조만간 옮겨 갈 병원에서 여자아이라고 확인을 해 준다 해도 하나도 실망스럽지 않을 것 같지만, 아들이라는 게 뭔가 더 반갑고 그런 마음이다.

딸이라면 너무 예뻐서 나는 손도 못 댈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날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아들이면 아빠가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을 거다. 좋아하는 운동도 할 수 있고, 남들이 흔히 말하듯 목욕탕도 같이 갈 수 있다. 커 가면서 고민이 생기면 들어주고 공감할 여지가 많을 거다. 어른이 되면 같이 술 한 잔 하기도 좋을 것 같다.

부모님은 이날 이후로 웃음보가 터졌다. 내심 아들이길 바랐다는 걸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가 밤에 자다 깨서도 손자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딸이면 어쩔 뻔했나 싶을 만큼 엄청나게 좋아했다. ​ ​장모님은 평소 자신의 딸이 아들을 키워 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한테까지 전해지진 않았지만 기뻐했을 것 같다. 장인어른은 자신의 딸과 똑 닮은 손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한 성격대로 손녀 이야기를 했지만 아이가 나오면 더없이 예뻐할 게 분명하다. ​ ​성별을 들킨 이상 이제 숨기지 않겠다는 듯 아이는 활발하게 움직인다. 가끔은 아내 배에 댄 내 손을 치는 것처럼 강한 태동도 한다. 신기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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