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하냐는 질문

@thelump · 2019-02-21 04:55 · kr

상영을 끝낸 감독에게, 전시를 끝낸 작가에게, 공연을 끝낸 공연가에게 관객은 질문한다. 본인 작품에 만족하시나요? 보통 많은 아티스트는 양 옆으로 손사래를 치면서 이렇게 모범 답안을 늘어놓는다. 아이구. 작가에게 만족이란 있을 수 있나요? 끊임없이 제 부족함이 보이고 아쉽기만 합니다.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음 작품을 또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겸손은 미덕이지만 노잼이기도 하다. 열심히 하라는 말로 알겠습니다, 라는 수상소감을 듣는 느낌이랄까. 나에게 저 질문이 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제가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작품이 나와버려서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놀라곤 합니다. 제가 두 번 태어난다고 해도 어려웠을 작업이었는데, 이렇게 해낸 저 자신의 재능에 무한한 존중을 표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섣불리 이렇게 속마음을 내비추다가 망하는 수가 있다. 질문자의 질문은 순수한 궁금증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질문자의 자세를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만약 질문자가 몸을 뒤로 젖히고, 팔짱을 낀채, 세모 눈깔을 하고 질문을 했다면 그 의도는 이렇다. '너 이런 쓰레기를 작품이랍시고 발표해놓고는 스스로 만족하냐?' 그러면 작전을 바꿔야 한다. 갑자기 당황한 표정, 멋쩍은 입꼬리, 머리 위까지 올라오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해야 한다. 아이구, 작가가 자기 작품에 만족한다는게 말이 되나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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