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던 제사

@jjy · 2019-10-24 12:15 · zz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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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해째 묶여 사는 생활을 하다 보니 여행은 고사하고 잠시 외출이나 마땅히 가야 할 곳도 시간을 내기 어렵다.

우리 나이가 되면 자식 혼사나 부모님 상을 당하는 일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었지만 그래도 해마다 받아보는 청첩장은 오랜만에 소식이 뜸하던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라 참석해서 축하도 하고 친구들과 궁금하던 얘기도 나누고 싶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경사에는 성의표시만 하고 내가 빠져도 크게 탓을 들을 일은 아니지만 장례식장에는 밤에 문상을 하는 것도 실례가 아니니 일을 마치고 밤늦은 시간에 가게 된다.

이렇다보니 경사에는 다들 밝은 얼굴로 사진도 찍고 멀리 살던 친구들과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헤어지지만 늦은 시간에 찾는 문상객은 상주를 위로하고 돌아서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친구들과 어울려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그런 나를 보고 한 친구가 별명을 지었다. 밤에 피는 장미라고, 딴엔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고 듣기 싫지 않은 말이라 그냥 웃으며 받아넘긴다.

그런데 얼마 전 부재중 전화가 찍혔다. 가끔 소식을 주고받는 친구가 전화를 했는데 벨 소리를 놓쳤다. 게다가 바쁜 시간이라 일을 끝내고 콜백을 하기로 했던 생각도 까맣게 잊고 몇 날이 흘렀다.

나중에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일이 그렇게 되느라 그랬는지 동창회 총무도 부고 전달이 늦었다. 결국 친한 친구의 부친상을 나중에 부조금만 보내는 실수를 했다.

그 친구 아버지는 어린 날 나를 많이 귀여워 해 주셨다. 덩치가 크고 왈가닥이던 친구보다 조그마한 체격에 목소리도 작던 나를 딸 삼자고 하시던 분이셨다. 본의는 아니라 해도 도리를 못하고 지나갔다.

친구는 어머니 먼저 떠나시고 혼자 지내시는 친정아버지를 보살펴 드리기 위해 자주 드나들며 아버지 걱정을 놓지 못하는 효녀였다.

얼마 전에 다녀가면서 이제 아버지가 하루하루 달라지신다고 하던 말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오히려 내게 일이 나도 크게 난 것 같다고 걱정을 했다며 전화를 해볼 참이었다고 한다.

위로를 하려다 오히려 위로를 받은 셈이다. 벼르던 제사에 물도 못 떠놓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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