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못쓴] 요르단에서 쓴 편지(1)

@afinesword · 2018-11-13 21:13 · bu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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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요르단 수도 암만에 와 있습니다. 암만에서 보내는 이틀째 밤이에요. 쓰고 싶은 글,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아요. 우리 신문보다 먼저 스팀잇에 그것들을 풀어놓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겠지요.

지면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또한 형식에 묶여 있으므로 아마 제가 쓰고 싶은 것들을 제가 쓰고 싶은 식으로 다 쓸 수는 없을 거예요. 귀국해서 기사를 쓰고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전해 드릴게요. 그날이 빨리 오기를.

아, 입이 근질근질해요. 이른바 기사의 ‘야마’와는 상관이 없어서 지금 써도 상도덕에 어긋나지 않을 만한 것들을 말해야겠어요.


역시 먹는 얘기부터 할까 봐요. 요르단인들은 양고기를 많이 드신대요. 아랍국 전반적으로 그렇다고 합니다. 아주 맛있어요. 제 입에는 잘 맞습니다. 누린내가 안 나는 건 아녜요. 딱 좋은 정도랄까요. 덜하면 양고기 먹는 기분이 안 나 서운할 것 같고, 더하면 역해서 못 먹을 그 중간 어디쯤의 향이 나요. 기름지지도, 너무 푸석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랍식 빵과 훔무스에 완전히 반해버렸어요. 난과 비슷한 빵, 영어권에서는 이것을 피타 브레드라고 하는 모양이지요? 현지어로 뭐라고 한다고 들었는데 잊어버렸습니다. 끼니마다 나옵니다. 우리로 치면 밥쯤 되나 봐요. 훔무스는 병아리콩을 으깨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식감이 부드러워요. 고소하고 짭조름합니다. 이걸 아랍식 빵에 발라먹어요. 귀국하면 3~4㎏는 쪄 있겠군요.

터키쉬 커피가 일반적입니다. 물과 커피 가루를 같이 끓인 거예요. 설탕도 조금 넣습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커피와는 전혀 달라요. 점도가 높아요. 거의 수프 수준입니다. 묘한 풀냄새가 납니다. 마시면 커피가루가 씹히죠. 설탕 덕분에 뒷맛은 달짝지근합니다. 저는 역시 맛있게 먹었는데, 일행 대부분은 안 좋아하셨어요. 제가 이쪽 스타일인가...


요르단은 운전 무법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은 양반이에요. 여기는 신호등이 거의 없습니다. 횡단보도도 거의 없고요. 그냥 가는 겁니다, 차도 사람도.

깜빡이, 그게 뭐죠? 그냥 막 끼어들어요. 정속주행, 그건 또 뭐죠? 비가 쏟아졌지는데 제가 탄 승합차는 속도를 줄일 줄을 모릅니다. 어디 이 차뿐이었겠습니까. 모두 달려라, 달려.

차선이 보이지 않아요. 드문드문 희미한 점선이 그려진 것을 보면 애초에 차선을 안 그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워지면 이것을 다시 그릴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닌지, 미루어 짐작만 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요르단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와 같은 석유 부국이 아녜요. 이 땅에서는 석유가 나지 않습니다. 국고가 넉넉하지 않아요.

그래서인가요. 교통사고 사망률이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지요. 통계에 따르면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몇 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거예요.

아, 현대차가 정말로 많습니다. 기아차도 심심치 않게 보여요. 서울인 줄. 이역만리 도로를 장악한 국산차를 보면서 국뽕에 취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농담처럼 썼지만, 정말로 괜히 뿌듯했어요.

사람


사람, 결국 다 사람이죠.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은 좀 퉁명스럽습니다. 당황스러울 정도예요. 여기 올 때 에미레이트 항공기를 타고 왔어요. 에미레이트 항공 소속 승무원들도 상당히 무뚝뚝했어요. 그런 걸 보면 아랍 문화권 서비스업 마인드가 우리와는 전반적으로 다른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요. 지인이 소개해준 요르단인은 또 어쩜 그리 친절하던지요. 씩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허, 참. 눈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남자도, 여자도. 꼭 속눈썹을 붙인 것 같아요. 반달을 뒤집어놓은 것 같은 곡선을 그리면서 하늘로 향해있어요. 마주 보고 얘기하다가 자꾸 그 속눈썹에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어요. 눈썹도 꼭 그린 것처럼 짙죠. 눈동자의 색은 검정, 갈색, 회색으로 제각각이었어요. 서양인처럼 파랗거나 녹색을 띠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곳에서 만난 그와, 저는 굳게 악수하였고, 또 언젠가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기를 희망한다고, 짧은 영어로 더듬더듬 말하였습니다. 그는 제게 세계에서는 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으므로 언젠가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쓰게 웃으며 제게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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