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른 호수에서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잔잔한 수면 위로 수많은 배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던 배 한 척, 양옆의 붉은 외륜이 물살을 힘차게 가르며 회전하고 있었고, 굴뚝에서는 희미한 증기가 천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마치 100년 전으로 시간이 툭 꺾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알고 보니 그 배는 Gallia, 1913년에 만들어진 실제 증기 외륜선이었다. 단순히 옛 배의 모습을 본뜬 복제품이 아니라, 지금도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며 운항 중인 ‘진짜’였다.
내가 타고 있던 유람선도, 그리고 그날 하루 동안 갈아탔던 다른 배들도 대부분 고전적인 구조를 일정 부분 유지하고 있었고, 내부의 기관이 돌아가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선실 중앙, 피스톤과 로드가 리듬감 있게 움직이고 있었고, 증기가 빠져나가는 ‘칙칙’ 소리가 적막한 호수의 풍경과 묘하게 어우러졌다.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엔진실 앞에 모여 안을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고 감탄사를 쏟아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마치 오래된 장난감의 속을 처음 들여다보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배 내부는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고전적인 기계장치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단순한 교통수단이라기보다, 기술의 역사와 인간의 감성이 뒤섞인 하나의 ‘유산’처럼 느껴졌다. 그 중에서도 Gallia를 마주친 순간은 특히 특별했다. 내가 타고 있는 배의 기관이 돌아가는 진동을 발 아래로 느끼며, 반대편에서 마주 오는 진짜 증기 외륜선을 바라보는 그 장면은 마치 과거와 현재가 물 위에서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 같은, 오묘하고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Gallia를 배경으로 연신 셔터를 누르는 모습은, 단지 그 배가 예뻐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설명 하나 없이도, 피어오르는 증기, 회전하는 외륜, 거침없이 움직이는 피스톤의 모습은 말보다 많은 것을 전하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이 조용하고 스마트해졌다고 해도, 이런 기계적인 진실함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묘한 힘이 있는 것 같다.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는 정말로 시간을 존중하는 나라구나. 이 배들이 여전히 운항되고 있는 이유는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도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신기했고, 어쩐지 부럽기도 했다. 과거의 기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름답게 기능하고, 사람들의 감탄을 이끌어내며 달리고 있다는 것. 풍경만이 아니라, 기술, 문화,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시간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나라. 루체른의 그 고요한 호수 위에서, 나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 쉬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