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서 지내다 보니 계절의 변화가 한국처럼 뚜렷하진 않지만, 요즘 들어 새벽마다 요란한 천둥과 빗소리가 들려옵니다. 우기가 시작되려는 걸까요. 하루의 시작이 그렇게 거칠게 열리니, 어쩐지 마음도 묘하게 무거워지곤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과를 마무리하는 저녁 무렵이 되면 하늘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난 뒤, 노을빛이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데 그 장면이 참 멋집니다. 바쁜 하루를 버틴 보상처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지요.
업무도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함께하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는 시기라 마음이 여러 감정으로 흔들립니다. 아쉬움, 홀가분함, 또 남아 있는 책임감까지 뒤섞여 있는데, 그 복잡한 마음이 노을빛처럼 다채롭게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말레이시아의 하늘은 매일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데, 오늘처럼 요란한 새벽과 고요한 저녁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참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문득,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이렇게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