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투어] 프롤로그, 새로운 국경을 찾아서.
나는 늘 국경을 꿈꿨다. 말하자면 땅에 두 발 디디고 서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살포시 넘나들 수 있는 자유와 융통성 같은 것들을 동경했다. 한 걸음 껑충 내딛는 사이에 국가가 바뀌는 경험은 아무리 여러 번 반복해도 설레고 묘한 일이다. 대학교 때 유럽여행을 시작으로 나는 그 묘한 쾌감에 빠져 꽤 자주 국경을 넘으며 길 위를 서성거렸다. 티베트에서 네팔, 인도, 파키스탄을 넘나들었고 터키에서 조지아와 불가리아와 시리아를 마케도니아부터 코소보 세르비아 등 발칸의 국경을 넘었다.
티베트 니알람에서 4일을 고립되어 있다가 7시간 눈을 헤치며 걷고 1시간 버스를 타고나서야 마주할 수 있었던 국경 도시 장무는 내가 겪은 가장 드라마틱한 국경이다. 나와 친구들은 밀입국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숨을 죽인 채 환호하고 숙소에 와서야 ‘우리 하나 되어 이겼어’ 노래를 부르며 오열했다. 모험이자 설렘이던 국경이 내게 무덤덤해진 건 무기력이 습관으로 굳어지던 어느 날들이 계속 이어지면서였다. 떠도는 삶과 머무는 삶을 반복하며 나는 떠도는 것도 머무는 것도 행복하지 않은, 무엇을 해도 행복하지 않은 돌연변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서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욕망도 열망도 기쁨도 행복도 아무것도 없이 남은 것은 무기력뿐이라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살아있지만 살아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씩 애써 몸을 일으키다가 결국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다시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나는 길 위에서 가장 크게 웃는 사람이었으니.
하지만 이번에 내가 떠나는 길은 두 발 디딜 수 있는 땅이 아니라 그 속을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찰랑거리고 위험한 바다다.
“크루즈 여행을 가보는 건 어때요?.”
애초에 남미로 여행을 가려던 내게 갑작스러운 이 제안은 얼토당토않게 느껴졌다.
“네??? 크루즈요?? 으하하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큰소리로 웃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크게 웃었던지.
“크루즈 엄청 비싸고 은퇴한 노부부들이나 가는 거 아닌가요?”
살면서 내가 크루즈 여행을 해볼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 없고, 관심도 가져본 적도 없다. 크루즈 하면 떠오르는 것도 타이타닉 같은 영화의 장면과 남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편견 정도뿐이다. 근데 순간 머릿속에 큰 배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 붉게 타오르는 해 질 녘의 하늘 아래 쪽빛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그 위에 떠 있는 하얀 색 배 안에 위스키를 한 잔 들고 서 있는 내가. 근사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크루즈는 내 생각만큼 비싸지도 않았다.
그래서 물렁물렁하고 유연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바닷길에 뛰어들기로 했다. 바다로 국경을 넘나들기로 했다. 크루즈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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